[롯치시즈]
귤님
이건 데이트일까.
로쿠죠 치카게는 자신의 옆에서 고히 잠들어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 만나자며 먼저 연락한 것은 자신이 아닌 헤이와지마 시즈오쪽. 치카게는 아직도 이 모든 시간이 꿈만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두 시간 이십칠 분 전. 오늘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 여자아이들의 메일을 확인하며 이케부쿠로로 출발하려던 치카게에게 시즈오가 먼저 연락을 걸어왔다. 만나자는 약속이랄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통보로 한가하면 나와라, 라는 말뿐이었지만 치카게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수락. 수많은 여자아이들의 원망 섞인 아우성을 뒤로한 채 시즈오가 기다리겠다고 말한 60거리로 달려갔었다. 재빨리 달려나간 그곳엔 평소완 다른 시즈오가 입에 담배를 물고 서있었다.
사복의 시즈오는 뭐랄까... 다른 사람이라면 인상을 찡그렸을지도 모르지겠만, 귀엽다. 그것도 상당히. 핫핑크 색의 귀여운 노란 병아리가 그려져 있는 앙증맞은 후드티. 색이 바라고 닳아가는 중인 청바지.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항상 소중히 가지고 다니는 선그라스를 꼈다. 이래서 모델은 중요하다니까. 핫핑크의 부담스러운 옷도, 푸른빛이 도는 선그라스도, 그럼에도 시즈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사실 시즈오가 보통의 남자였다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 리스트 8위쯤 차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헤이와지마 시즈오란 이름으로 모두 용서가 가능하다. 치카게는 내심 시즈오가 보통의 여자아이들처럼 꾸민듯 안 꾸민듯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오길 기대했지만(바텐더 복의 시즈오만 오랫동안 봐온터라 평범한 사복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언밸런스, 갭의 차이에서 나오는 귀여움. 아름다운 사람은 뭘 해도 아름답다, 가 그의 지론이다.
왔냐. 인사는 시즈오가 먼저 건냈다. 담뱃재를 털어내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본건지 손을 들어 양옆으로 살짝 흔들었다. 시즈오형씨. 본래 치카게가 남성을 부르는 호칭은 형씨하고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지만 시즈오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던 치카게 나름대로 꾀를 낸 결과였다. 사실은 좀 더 친근하게 시즈오, 하고 부르고 싶은데. 아무래도 시즈오의 끓는점을 조절하기엔 아직 치카게의 숙련도가 낮았기 때문에 이정도에서 타협을 보기로 했다. 치카게는 성큼 시즈오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즈오의 고개가 살짝 기울여지며 나름 반가움의 표시를 해보인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다. 별로. 치카게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불러준 사실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처음이라. 너라면 자주 가봤을 것 같아서 불렀다.”
가보고 싶은 곳? 치카게의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시즈오가 원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함께 가주겠지만 자신이 자주 다녔을 법한 곳이라는 소리에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다. 자신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치카게를 뒤로 하고 시즈오는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를 설명해 주지 않고 따라오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시즈오의 뒤를 치카게가 따라 걷는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어쨌든 그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치카게는 걸음을 빨리하며 비어있는 시즈오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시즈오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
도착한 곳은 요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고 있는 유명한 카페였다. 함께 다니는 여자아이들과 와본적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의 스페셜 파르페는 크기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재료와 화려한 장식으로 유명하다. 맛도 최상급. 거기다 카페 안의 인테리어도 아기자기해서 귀엽다.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가 오고 싶었던 거구나. 가게에 도착하자 밖에서의 당당함과 남자다움은 어디가고 어색함에 주위만 두리번 거리는 시즈오가 귀여워서 치카게는 웃고 말았다. 확실히 이런 곳이라면 시즈오의 주위 인물 중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와봤을 만한 인물이 없다. 치카게는 어색하게 서있는 시즈오의 손을 잡아끌었다. 거기 서있으면 뭐해. 이쪽에 앉자.
치카게는 딱히 시즈오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다. 예의 없이 굴거나 버릇없는 것을 싫어하는(그렇게 추측) 시즈오에게 어른으로서의 대우나 예의는 지키고 있지만 존대는 하지 않았다. 이건 치카게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연하의 남자가 연상의 연인에게 어른스러운 남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흡사하다고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시즈오는 치카게의 반말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치카게는 시즈오에게 존대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치카게의 손이 테이블을 두드린다. 몇 번 와본적이 있기 때문에 메뉴는 이미 고른 상태였다. 대신 시즈오가 신중하게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열심히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는 시즈오를 보며 치카게가 또 미소 짓는다. 이 남자는 어째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뚫어져라 메뉴의 이름과 그 옆의 예시 사진을 번갈아보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어느 여자아이보다 귀여웠다. 여기는 이게 맛있어. 치카게는 심각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바라보는 시즈오를 향한 미소지으며 메뉴판 상단에 있는 메뉴를 가리켰다. 그래? 시즈오의 고개가 갸웃 하며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여기서 여자아이들끼리였다면 몇 가지 메뉴를 심사숙고해서 고른 뒤 전부 주문해서 서로 나누어 먹었겠지만 아쉽게도 치카게와 시즈오는 서로 음식을 나눠먹기엔 그정도로 사이가 가깝지도 않았고 인원도 많지 않아 무리였다. 치카게는 가능한 상세히 메뉴를 골라주며 그 맛을 설명해주었다. 이건 딸기가 들어가있고 여기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이랑 얼린 산딸기와 파인애플, 바나나, 블루베리등이 들어가 있어서 상큼한 맛이 난다, 하고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내며 설명하는 치카게 덕분에 시즈오는 심사숙고 끝에 메뉴를 정할 수 있었다.
달콤한 디저트를 입에 물고 있는 시즈오는 상당히 행복해 보였다. 잘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볼도 약간 상기되어있고 입꼬리도 살짝 올라가있다. 거기다 선그라스에 가려진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렇게 좋을까, 하고 치카게는 자신의 키위요거트 파르페를 먹으며 생각했다.
시즈오. 불현듯 치카게는 시즈오의 이름을 불렀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던것 뿐이었다. 응? 파르페에 집중하고 있던 시즈오의 행복한 얼굴이 그를 바라본다. 유난히도 상기된 볼과 행복해보이는 얼굴. 미소를 짓고있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 젠장. 시즈오와 눈이 마주친 치카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재빨리 고개를 젓고는 큼직하게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젠장, 망했다.
섰다.
*
아, 방금 입술 오물거렸다.
한 시간 전쯤 둘이서 파르페를 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더 이상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찾아온(시즈오는 정말 파르페만을 먹기 위해서 치카게를 불렀다.) 근처 공원에서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현재는 아까 그 많은 양의 파르페를 먹어치우고 또 아이스크림이 들어갈 배가 남아있었던 건지 근처에서 파는 소포트 아이스크림 까지 먹어치운 시즈오는 나른한 햇살에 깜빡 잠이 들었고, 치카게는 그런 시즈오를 관찰 중이다.
자는 얼굴도 귀엽다. 치카게의 어깨에 기대에 잠들어 있는 탓에 눌려있는 볼 살이 깨물어주고 싶은 만큼 귀여웠다. 치카게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시즈오의 볼을 꼬집어보았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혀는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다. 아, 안돼. 카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얼마나 진땀을 뺐었던가. 게다가 여긴 밖이고 옆에는 시즈오가, 시즈오가, 시즈오의 체취가, 온기가...!
헉. 치카게는 딴 곳으로 흘러가는 정신을 다잡았다. 어떤 여자가 옆에 있더라도 매너적인 행동을 유지하고 이성을 잃지 않았던 치카게로써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치카게는 다시 시즈오의 얼굴을 관찰했다. 여자애들처럼 화장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피부는 뽀얗고 깨끗하다. 입술은 살짝 트긴 했지만 적당한 모양새에 입꼬리는 예쁘게 휘어있다. 코도 적당히 높고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눈은 사실은 굉장히 다정하다. 어느모로보나 남자답게 생긴 미남인데 이상하게도 어느 여자아이보다 귀엽다. 이런걸 콩깍지가 씌였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치카게는 잔뜩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시즈오의 가슴을 매만져보았다. 평평... A컵의 여자아이도 이보단 나와있으니까, 정말 여자는 아니다. 오히려 가슴에 지방의 느낌 보다는 단단한 근육의 느낌만 느껴졌다. 여자아이도 아닌데, 귀엽고, 사랑스럽고.. 어째서 끌리는 걸까. 좀 더 손끝을 움직여본다. 치카게는 더듬거리며 손을 움직여봤다. 옷감의 감촉만 느껴지는데도, 어째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으음...?”
“...!”
치카게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느꼈을까? 치카게는 자신이 한 행동에 뒤늦게 충격을 느끼며 허둥지둥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뒤에 혼자 남겨졌을 시즈오가 얼마나 당황할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다음에 시즈오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를정도로, 발정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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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만지는 롯치. 를 써드리기로 했는데 괜히 그랬나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