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이벤트 당첨. 다한님[이자시즈]
*RT이벤트에 당첨 되신 다한님을 위한 글입니다.
*공포 5084. 공미포 3846.
*16살 이자야 24살 시즈오. 나이 변경 조금 있습니다ㅠ
*인간관찰이 취미이신 정보상님 이지만 아주 어릴적에 다른 것에 눈이 돌아갔다면 어떨까 하는 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글이라 죄송스럽습니다ㅜ
이제 막 고등학교 교복을 걸치게 된 이자야는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타고난 외모와 잘 단련된 육체 위에 걸쳐진 옷이 무엇인들 어울리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잘 재단 된 까만 가쿠란은 오로지 그만을 위해 디자인되고 만들어진 옷처럼 필요 이상으로 잘 어울렸다. 이제야 입어 보게 되네. 별거 아닌 옷차림이 마음에 들어 이자야는 싱긋 웃는 얼굴로 제 몸 이곳저곳을 거울에 비춰보다가 방문을 열었다.
‘시즈오의 방.’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맞은편의 방문에 걸린 팻말에는 이자야의 새로운 형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똑똑. 이자야는 방문을 두 번 두드리고 대답이 돌아오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내부의 풍경이 방문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불빛에 의해 환해졌다. 이자야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암막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을 크게 열었다. 조금 서늘한 바람이 부드럽게 커튼을 헤치고 방 안 가득 차올랐다. 시즈쨩. 이자야는 머리까지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시즈오의 옆자리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었다. 까치집이 진 노란 머리카락이 이불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것이 귀여워 보였다.
“으음...”
“시즈쨩, 아침인데.”
“......”
“시-즈-.”
“.....”
“안 일어 날거야? 응? 시즈? 시즈쨩. 시즈으으쨩.”
“....시즈라고... 부르지마..”
“아,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시즈오의 얼굴이 삐죽 불쾌한 감정을 담고 이자야를 바라보았다. 꼴이 그게 뭐야. 이자야는 웃는 얼굴로 시즈오의 머리를 다듬어 주다가 하얀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몸을 끄집어 올렸다. 줄곧 포근한 이불 속에 감싸져 있는 몸이 서늘한 공기와 맞닿자 작게 움츠러든다. 이자야는 시즈오의 움츠러든 몸이 추운 공기에 제 정신이 들기까지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즈, 이것 봐.”
“어.”
“시즈랑 같은 교복이야.”
“라이진 교복이네.”
“응.”
“근데 그 학교 교복 바뀌지 않았었나..?”
“뭐, 그렇긴 했는데. 그런 것보다 잘 어울리지? 응?”
“어... 뭐. 그렇네.”
시즈오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이자야는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은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품을 하는 시즈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기된 볼이 마치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의 같은 모양새다. 이걸 자랑하려고 그랬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자신의 잠을 깨운것이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한껏 올라간 고개와 뿌듯한 얼굴이 귀여워서 시즈오는 제멋대로 엉킨 제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자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어울린다. 친절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제 딴에는 칭찬이었다. 이자야는 다시 한 번 기쁜 얼굴로 웃어보였다.
“나도 알아.”
시즈쨩이랑 같은 교복인데 안 어울릴 리가 없잖아.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조근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이자야의 모습은 어딘가 기묘한 느낌을 주었지만 시즈오는 익숙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진짜 잘 어울린다 그거. 입학 축하해. 그리곤 건성 같은 말투로 진심이 담긴 축하를 건네며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일어난 김에 씻어야겠다. 시즈오의 등을 바라보는 이자야의 귀로 작은 중얼거림이 흩어졌다.
*
시즈오와 이자야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가족이었다. 시즈오가 24살의 성인이었고 이자야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16살 이었다. 첫 만남이 10년 전인 둘은 성이 달랐다. 이자야는 오리하라 라는 성을 단 아버지와, 시즈오는 헤이와지마라는 친 아버지의 이름을 이은 채 어머니와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쉽게 말해 각자의 자녀를 둔 두 남녀가 재혼 했다는 의미였다.
이자야는 아직도 시즈오를 처음 보았던 그 날을 기억했다.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은 혼란이 가득한 얼굴로 이자야를 바라보았었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에는 긴장감과 슬픔이 묻어났고, 낮은 목소리에는 분노와 체념이 묻어있었다. 이자야는 붉은 눈동자 가득 시즈오의 얼굴을 담았던 그날을 기억했다.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감정이었지만 제 남은 인생의 모든 것들을 뒤바꿀 만큼 강렬한 기분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자야가 시즈오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자야의 인생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게 분명하다고 확신할 만큼, 시즈오는 이자야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자야는 본래에도 남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얼굴에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표정뿐만이 아니라 몸짓에 느껴지는 감정의 표현을,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행동들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래서 처음 어머니가 사라진 방안에서 눈을 떴을 때에도 쉽사리 자신의 상황을 인지 할 수 있었고, 어린 아이답게 쓸쓸함에 조금 울기는 했지만 쉽게 제 상황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자야는 스스로 생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정의를 내릴 무렵부터 타인의 손짓과 눈빛에서 감정을 느꼈다. 몸짓은 진실을 쫒으면서도 입으로는 거짓을 말하는 행동들이 신기했다. 제 뜻대로 흘러가는 일들이 좋았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일들도 좋았다. 그냥 이자야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마치 재밌는 이야기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이자야는 그저 그게 좋았다. 그리고 영특한 머리가 그것을 스스로 깨달아갈 무렵에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나타난 것은 어쩌면 운명일 지도 몰랐다. 이자야는 시즈오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시즈오 같은 사람은 오로지 시즈오 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자야에게 시즈오는 제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인간은 어떤식으로 이루어져있는가.
굳이 말하자면 이자야는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삐뚤어진 채로 굳어버린 어른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제 나이답지 않게 영악하고 영리했으며 반대로 또래 아이들보다 더 치기어리고 순수하게 잔인했다.
이자야는 간혹 진심으로, 시즈오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제 눈이 향하는 대상은 오로지 시즈오 뿐이었으니 그 관찰 대상이 하루의 대부분을 제 시야에서 사라져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분노만큼이나 제 시선에 닿지 않는 시간 또한 사랑스럽게 여기고는 했다. 그것은 이자야의 사랑이 그만큼이나 순수하고 광적이며 질척인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시즈오의 인생의 대부분은 고난 같은 폭력이 함께 따른 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가 느끼는 사랑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시즈오가 깨닫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이자야의 가는 목을 졸랐을 지도 몰랐다.
이자야는 부드럽고 조용하게 시즈오의 인생 곳곳에 파고들었다. 본래에도 타고난 성격과 타인과 다른 ‘특이한’ 능력 탓에 친구가 적은 시즈오의 인생에 이자야라는 암운이 드리우자 시즈오의 인생에서 ‘타인’이라는 존재가 말끔하게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동생’이라는 사용하기 좋은 타이틀을 이용해서 시즈오의 시간을 붙잡았고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시즈오 본인이 만들어낸 상황을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상냥한 동생 역할을 조금만 해낸다면 가엽은 시즈오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 대신 어린 동생을 의지 할 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에 이자야는 시즈오가 고립되어 가는 상황에 대해 더욱 즐거워했다. 그렇듯 이자야가 원하고 예상하는 대로 시즈오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갔고 종래에는 친구라고 부를만한 인연도 가지지 못한 채 이자야의 권유대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시즈오였다.
‘요즘 조금 거슬리는 구석이 있지만.’
이자야는 이리저리 어질러진 시즈오의 책상을 치우며 작게 혀를 찼다. 책상 위에 놓인 프린트 물에는 커다랗게 ‘동아시아 정세와 현대의 미술 문화.’ 라는 다소 괴이한 주제의 글자들이 수놓아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시즈오의 이름과 팀원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선동하기 쉬운 고등학교에 비해 대학교는 자유로운 활동 탓에 시즈오를 고립시키는 것이 조금 어려웠다. 때문에 ‘조별과제’ 라는 핑계로 시즈오에게 엮이고 있는 인연들이 이자야의 눈에 몇 번이고 밟혔다. 결국 며칠 전에는 무려 이자야에게 ‘오늘은 과제하고 놀다가 들어갈 것 같아.’ 라는 전화까지 받을 정도였다. 물론 그 다음에는 이자야가 약간 손을 쓴 탓에 시즈오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었다.
이자야는 제가 모르는 곳에서 웃고 있을 시즈오를 생각하면 배알이 꼴렸다. 정신적으로 몰아넣어진 상황에서의 시즈오도, 육체적으로 한계에 달할 정도의 시즈오도, 웃고 있는 것도, 우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짜증을 내고 오열을 하는 것도 모두 이자야의 것이어야 했다. 그것을 바라보고 즐거워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어야 했다.
시즈가 내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으니까. 당연하잖아. 이자야는 활짝 열린 방문을 바라보았다. 제 방문 앞에 걸린 팻말에 적힌 제 이름이 보인다. 이게 올바른 형태지. 서로가 마주보고 있는, 이 상태. 만족감이 가슴 가득 뿌듯하게 차올랐다.
이자야는 눈을 감고 가만히 시즈오의 작은 방안을 떠올려 본다. 시즈오의 취향이 곳곳에 묻어나는 이 공간에는 사실 이자야의 취향도 짙게 묻어있었다. 햇볕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꼼꼼하게 막아놓은 창문과 제 손으로 직접 선물한 인형과 책들, 시즈오의 옷가지와 게임기, 침대 시트까지. 이자야는 모든 시즈오의 모든 시간과 모든 모습들을 공유하길 원했고 메울 수 없는 차이를 물질적으로, 혹은 기록으로 남기길 원했다. 이자야는 조용히 눈을 떴다. 이 작은 공간은, 갈 곳 없는 시즈오가 마지막으로 기댈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둘러싼 이 집은 아직 제 손에 닿지 않는 시즈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두는 철장 안 이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었고 이자야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시즈오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검은색 가쿠란을 걸치고 있었다. 따라 잡고 있어. 이자야는 낮게 미소 지었다. 따라 잡고 있다. 먼저 앞서나가고 있는 시즈오의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결국에 시즈오의 시간에 이 손 끝자락이 닿는 순간, 이자야는 이 모든 울타리가 필요 없을 만큼 시즈오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킬 생각이었다.
이자야는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오는 시즈오의 발걸음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시즈오는 제 방에 남은 이자야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지을 테지만, 평소와 같은 웃는 얼굴이 마주하게 되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오늘 하루의 시작도 이자야와 함께하게 될 것이었다. 둘의 다른 하루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리고 둘의 시간이 겹치게 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때 까지 시즈오의 작은 우리 앞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이자야 뿐이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