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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라라

이자시즈 White Christmas

by 체리롤 2016. 3. 6.

*2015.05.10 케이크스퀘어

*엄청 짧은 배포본 공개

 

 

 

White Christmas

 

 

 

이자시즈 펑크★기념 배포본

~사귄지 100일이 되었습니다~

ps. 양심이 죽었어

 

“오늘 늦어?”

 

하아아아, 통화를 끊은 이자야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살짝 벌린 입가에서 하얀 수증기가 몽글몽글 쏟아져 나왔다. 날씨가 춥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더니 늘상 즐겨 입는 털 코트로는 더 이상의 보온을 바라는 것은 무리인듯 싶었다.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이자야는 후드를 꾹 눌러쓰고 잰걸음으로 신호등을 건넜다.

신호등을 건너 두 블록을 더 가면 자주 가는 빵집이 나온다. 여러 가지 맛있는 빵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쇼트케이크가 굉장히 맛있는 집이었다. 이자야는 자신을 반기는 주인에게 인사를 건내고 미리 주문해둔 케이크를 받았다. 바로 내일이 크리스마스 인지라 진열장의 케이크는 대부분 매진 상태였다. 역시 미리 주문해 놓길 잘했네. 시즈 말 들었다가 큰일 날 뻔했잖아. 이자야는 미리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며 큰소리치던 시즈오를 떠올리며 나머지 잔금을 건넸다.

자. 가장 중요한 케이크는 샀지만 나머지 준비는 아직 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이자야는 주머니에서 쇼핑목록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의 이브이자 오리하라 이자야와 헤이와지마 시즈오 커플의 100일을 맞이하기 하루 전 날이었다.

 

 

*

 

 

오리하라 이자야가 헤이와지마 시즈오에게 고백 한지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둘은 연인이라는 관계를 맺었고, 각자의 보금자리를 옮겨 동거를 시작했다. 비밀은 아니었지만 딱히 티를 내지도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지난주의 일이었다.

‘오리하라 이자야와 헤이와지마 시즈오가 연인이 되었다.’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수증기 보다 가볍고 새로 산 러그 보다 간질간질한 말이다. 어느 누가 둘 사이에서 연인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건 둘의 어떤 관계보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러나 둘은 지금 연인이 되었다. 모두가 고개를 내저었지만 결국 두 사람의 인연은 이것이었다. 이런게 인생이었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도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진다. 필요한 건 바라는 것을 잡아 낼 용기뿐이었다.

사실 연인이 되었다곤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이자야는 시즈오에게 독설을 내뱉었고, 시즈오는 이자야에게 물건을 집어던졌다. 다만 이제 이자야는 매서운 말로 시즈오를 상처 입히지 않았고, 다른 어떤 말보다 잔소리 하나로 시즈오를 굴복시키는 법을 터득했다. 시즈오는 시즈오 나름대로 손에 잡히는 물건의 무게를 낮췄다. 그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발을 동동.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이자야는 작게 코를 훌쩍이다 핸드폰을 들었다. 잠금 화면을 해제하자 라인톡에 1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곧 들어간다.」

 

어쩜 이렇게 귀엽지 않을까. 다른 연인 같은 사랑스러운 말투를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더 무뚝뚝한 말투에 이자야는 작게 불만을 내뱉었다.

 

「빨리 안 오면 케이크 없어.」

「죽는다.」

「이럴때만 답장 빨리하지 말아줄래. 어디쯤이야?」

「신호등 앞.」

「일부러 그러는거지?」

「어디냐며.」

「...됐으니까 빨리 와. 나 추워.」

 

아까 사온 케이크는 이미 전골을 끓일 식탁 한 편에 올려둔 상태였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이미 다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남은건 시즈오가 들고 올 전골 재료와 작은 트리에 별을 올려줄 시즈오 본인뿐이었다. 신호등 쪽이라고 했으니 이자야의 추측이 맞다면 15분 안으로는 시즈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별로 기쁘진 않지만 이자야는 이제 시즈오의 불친절한 네비게이션 알림을 해석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정말 별로 기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이자야.”

“늦어.”

“기다렸냐.”

 

알림이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붙들고 있기를 정확히 16분. 드디어 나타난 시즈오를 보며이자야는 핸드폰을 꼭 쥐고 있던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끝나고 바로 왔다. 밖에서 기다리게 했던게 미안했던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이자야의 곁으로 다가오는 시즈오의 양손에는 대형마트의 로고가 박힌 큼지막한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래도 늦어. 그나저나 시즈 또 목도리 안하고 갔네.”

“답답해서.”

 

이자야는 시즈오의 손에 들린 봉투를 들었다. 제법 묵직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주문하지 않은 간식거리를 잔뜩 사온 모양이었다.

 

“이런거 사오지 말라니까.”

“내가 다 먹을거다.”

“시즈 그러다 돼지 된다?”

“그래서 싫냐?”

“돼지는 싫어.”

 

둘은 나란히 걸었다. 꽤 멀리 마중을 나온 탓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제법 길었다. 하얗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입김이 대화 대신 흘렀다. 평화롭다. 이자야는 문득 시즈오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금발과 굳게 다문 입술. 화내지 않는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정말 이름 그대로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이자야의 눈에는 너무 눈이 부셔서, “시즈. 손잡자.” 하고 손을 뻗었다.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고 하늘은 우중중한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이자야는 시즈오의 코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았다. 하얀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고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눈으로, 온 몸으로 시즈오를 바라보았다. 한 번 눈에 들어온 이후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시즈오의 손끝과 시선이 향하는 눈동자와 제 눈앞에서 사라질듯 겨울 풍경에 녹아드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고, 문득.

 

아.

아. 사랑스러워.

 

제 감정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있었다. 비 내리는 교정에서. 노을진 골목길에서. 무지개가 떴던 옥상에서. 오리하라 이자야는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사랑했다. 그건 오래전부터 그가 가지고 온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었다. 이자야는 시즈오를 사랑했다. 겁이 나서 숨겨두었던 감정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이자야. 눈 내린다.”

 

살짝 접히는 눈 꼬리가 자신을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순수하게 기뻐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자야는 감사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시즈쨩.”

“응?”

“별장식은 시즈를 위해 남겨뒀어. 집에 가면 그것부터 달아보자.”

“그래.”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 보았다. 얽혀있는 손은 뜨겁다. 아아. 이자야는 눈을 감았다. 이 기쁨은 어찌 할 수 없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자야가 바라던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100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