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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라라

2013년 이자시즈 고어물

by 체리롤 2016. 3. 29.

*2013년 언젠가의 글

*고어 리퀘였던 걸로 기억 

*완성은 아니었는데 그냥 끝내도 될 거 같은 글




꿈일까. 그는 손끝에 걸리는 나이프의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생각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조차 꿈처럼 몽롱하고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에 볼을 스치는 바람도, 입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입김도 그 무엇 하나 그를 현실로 끌어오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그는 그 모든 광경을 꿈에서나 바라보는 듯 닿아오지 않는 정신으로 지켜보았다. 더운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숨소리를 귓가에 담긴다. 이렇게 선명하게 가뿐 숨소리가 귓가에 생생히도 들려오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손안에 들려있던 나이프를 털어내자 거친 숨소리를 내뱉던 목소리가 단말마와 같은 비명소리를 토해냈다. 피가 베어 나오는 입술이 벌어지면서 어떠한 입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즐겁게 웃었다.


이 모든 것들이 꿈과 같다.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은 현실처럼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면죄부가 된다. 그의 행동에서 피어나는 배덕감조차 그는 단물을 마시듯 흘려 넘겼다. 그는 나이프를 쥔 손을 들어 거칠게 찍어 누르며 비틀었다. 또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비명소리는 어딘가 이명 소리와 닮아있었다.


손안에서 부서져 내리는 덩어리는 바스라진 두부덩어리 같고, 주르륵 궤적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핏줄기는 해질녘 노을의 색깔을 뽑아와 눈물 속에 녹여 놓은 것 같다. 그의 벌어진 입술에서 연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몸은 망가지고 해지고 부서져도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너는 정말 최고야, 시즈.


비명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몸뚱이가 요동친다. 온 몸을 물들이는 상처자국은 묘하게 이어져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발목 아래로는 선명한 붉은 물빛들이 바닥을 적셔내며, 자신이 만들어낸 웅덩이 속에서 죽어가는 몸뚱이가 미쳐 날뛰기를 원하는 짐승처럼 요동쳤다. -♪ 그는 즐거움을 참지 못하고 낮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콧노래 소리가 비통한 울음소리와 묘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창가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달빛이 두 개의 그림자를 비춘다. 그 빛에 따라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던 그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남자는 아름다웠다. 미목수려라는 말이 어울리는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형에 나른하고 행복감에 젖어있는 그의 얼굴은 평온했고 또, 사랑스러웠다. 아, 시즈. 저것 봐. 남자는 자신의 밑에서 헐떡거리며 요동치는 상대를 짓밟아 억누르며 가녀리게 떨리는 그 목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눈가에 고여 있던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달이 참 아름답네요."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가 그러한 말을 했던가. 상당히 낭만적인 사람이다. 고작 달 따위에 사랑을 비교 할 수 있겠냐만은 그 은유적인 표현만큼은 참으로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달이 참 아름답네요. 그는 사랑의 의미를 담아 속삭였을 그것을 입에 담아 나긋하게 속삭였다. 달이 참 아름다워. 그렇지, 시즈?


과거에는 시각을 담당했던 고체 덩어리가 그의 손안에서 흘러내려 더러운 바닥을 적셨다. 그는 그것을 한 번 털어내고는 손을 더듬어 움푹하게 패여 버린 장소를 매만지다 푸른 핏줄기가 돋아나있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손끝을 타고 자신에게 전해져오는 기분은 무엇보다 감미롭다. 쿵쿵쿵쿵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심장의 박동이 자신의 심장소리와 맞물려 기묘한 소리를 내는 그 순간을 느끼며 그는 손톱을 세워 돋아난 핏줄을 긁어내렸다.


“그러니 시즈는 이제 죽어도 좋을거야.”


피로 물든 처연한 얼굴이 아름다웠다. 잘생겼다는 표현이라면 어울릴지 모를까 자신의 밑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남자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뭔 외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아름답다니.. 그는 이 모든 것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즐거워 죽을 것 같았다. 자신보다 크고 강인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 자신의 발밑에서 괴로움에 허덕이는 것도, 피와 달빛에 물들어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도, 전부 즐거웠다.


"전부터 궁금했어. 시즈는 괴물이잖아? 그럼 이 물컹거리는 눈동자도 단단한걸까? 하고."


생각보다 단단하지도 않고 시시했지만. 어쨌든 시즈 덕분에 알아냈지. 정말이지, 시즈 덕분에 이제 내가 알고 싶은 건 다 알아냈어. 그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고마워하고 있어. 정말로. 남자는 핏줄을 긁어내리던 손으로 그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 입술 끝에 살짝 입 맞추었다.


그러니까 시즈, 이제 얼른 죽어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녹아내릴 듯 달콤했지만 그 의미만큼은 매서운 독이 되어 귓가를 녹아내렸다. 이제 괴로워 하는 울음소리에 구슬픈 울음이 섞여 들어간다. 억울해 하는 건지,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건지 알 길은 없었지만 이자야는 아무래도 좋았다. 얼른 이 손안에 있는 존재를 죽이고 죽여서 잘게 조각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짓밟고 유린하며 종내엔 자신의 몸 안으로 흡수시키고 싶었다. 이자야는 끈적거리는 손가락을 그의 옷에 닦아냈다.


이것은 지독한 혐오다. 그러나 내비쳐지는 감정의 겉껍데기가 혐오와 같다고 해서 그것을 혐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리하라 이자야는 인간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울타리 안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것에 자신의 사랑을 낭비할 만한 체력도, 애정도 없었다.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오리하라 이자야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부류에 대해서는 강렬한 증오와 함께 또한 어쩔 수 없는 애정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오로지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힘으로만 괴물이 된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그에게 더할 나이 없는 증오와 애정을 느끼게 했다.

맞아. 그의 웃음소리가 드높아진다. 격정된 감정들이 웃음소리에 세어들었다. 맞아, 시즈. 맞아.




이건 사랑이야. 시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