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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상/네가 서있던 자리

[이치카라/토도쥬시] 네가 서있던 자리0

by 체리롤 2015. 12. 25.

* 정신병원 au
* 서브 컾 오소쵸로 아주 약간있음
*프롤로그 격 글





죽고싶어요.

길게 쌓아 올린 말끝에 던져진 진심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위험했다. 입가에 번진 웃음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자신을 바라보던 눈동자는 스멀스멀 기어나온 본심에 짓눌려있었다. 아아, 생각보다 무섭다. 토도마츠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는 말을 돌려야했다.

"쥬시마츠군."
"네."
"쥬시마츠군은 죽고 싶다고 했잖아. 하지만 그 생각에 대해 카라마츠군은 어떻게 생각한데?"
"카라마츠 형이요?"
"응."
"카라마츠 형은... 바보같다고 생각한데요. 세상이 이렇게 반짝거리는데 왜 죽고싶냐고. 형이 반짝이는 세상을 많이많이 보여줄거고 또, 자기가 옆에 있어주는데 뭐가 그렇게 무섭냐고."
"와, 그렇게 말했어? 멋진 형이네."
"맞아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형이예요."

무겁게 가라앉았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았다. 다행이다. 토도마츠는 몰래 한 숨을 쉬며 쥬시마츠의 손등을 토닥여주었다. 오늘 상담은 깊은 속마음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낸 탓에 쥬시마츠도 자신도 상당히 힘이 빠져있었다. 오늘은 이쯤해도 되겠지. 토도마츠는 슬쩍 쥬시마츠의 등 뒤에 있는 시계에 시선을 주는걸로 상담이 끝났음을 알렸다. 쥬시마츠는 눈치가 빠르다. 단숨에 의도를 알아낸듯 축 가라앉아 있던 얼굴과 어깨에 서서히 힘이 돌기 시작했다. 토도마츠는 그 모습을 조금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다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쥬시마츠 군이 많이 힘들다는 걸 알았어. 그런데도 상담 잘 따라와줘서 고마워. 선생님은 언제나 쥬시마츠 군 편이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이야기 해 줘. 그럼, 오늘 상담은 여기서 마칠까?"

쥬시마츠는 그 말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끝내자. 뭔가 잔뜩 적어넣은 차트판을 챙긴 토도마츠는 가볍게 양손을 짝 마주치고 빙긋 웃었다. 박수소리에 맞춰 쥬시마츠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과 장난기가 가득 얽혀들어갔다.

"끝났다아! 끝났다! 토도마츠 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제 빠이! 바이! 하이! 바이!"
"응응, 쥬시마츠군, 조심해서 들어가. 카라마츠 군에게도 안부 전해줘."
"우옷! 알겠습니다!"

빠르게 겉옷을 챙긴 쥬시마츠가 요란스럽게 겉옷을 챙기며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방금 전과 달리 잔뜩 텐션이 올라간 몸이 들썩거리며 문이 열리자마자 문밖으로 던져졌다. 그러다 다쳐! 쥬시마츠를 주시하던 토도마츠가 급하게 외쳤지만 금세 아하하하! 카라마츠형아!!! 끝났다! 끝났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토도마츠는 한 숨을 내쉬는 걸로 걱정을 대신했다.

쥬시마츠만 왔다가면 한적하고 조용한 상담실이 더 쓸쓸해진다. 하이텐션인건 잠시 뿐인데도 이렇단 말이지.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제 책상 위에 삐뚜름하게 놓여진 이름패를 똑바로 세우며 토도마츠는 차트판과 기타 잡다한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쥬시마츠를 끝으로 토도마츠도 오늘 상담은 끝이었기 때문에 마칠 준비를 하는것이었다. 물건을 다 챙긴 토도마츠는 쥬시마츠가 벌컥 열어놓고 간 문을 닫고 상담실 바로 옆의 조그만 개인 작업실로 들어갔다.

개인실은 깔끔한 목재 책상과 주위에 자물쇠가 담긴 철제 사물함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토도마츠는 익숙하게 정면 제일 오른쪽 서랍을 열고 가볍게 파일들을 넘겼다.

마츠노 쥬시마츠(17)

큼직하게 적힌 이름이 바로 쥬시마츠의 이름이다. 나이는 17세. 16살의 끝무렵에 찾아와 지금은 17살 여름에 머물러있다. 그러고보니 상담한지 조금 됐구나. 토도마츠는 오늘 분의 서류를 파일에 끼어넣으며 처음 보았던 쥬시마츠를 떠올렸다. 노란 옷. 밝은 웃음. 화를 모르는 성격. 그러나 억눌리고 짓눌린 진심. 불안감. 그리고 그의 형, 카라마츠.

토도마츠는 다시 한 숨을 내쉬었다. 모든 상담자들이 그랬지만 특히 쥬시마츠를 생각하면 여러 의미에서 한 숨이 절로 나왔다. 토도마츠는 상냥하고 착한 쥬시마츠를 안쓰러워하며 귀여워하고 있지만 쥬시마츠는 생각보다 위험한 환자다. 자신에게 넘어온 것이 육개월이 조금 안 됐을 뿐이지 꼬박 5년을 같은 문제로 치료받았던 환자였다. 이년 전에는 딱 한 번 다니던 병원에서 날뛰는 바람에 당시 상담의가 크게 다칠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랑스러운,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가 정신병원과 카운셀러를 전전하며 꽃도 펴보지 못한 채 속으로 죽어간다는 건 상당히 슬픈 일이다. 토도마츠는 아직 미숙한 상담자였기에 쥬시마츠를 애쓰고는 있었지만 자신은 없었다. 가능하면 자신의 손으로 고쳐주고싶다.. 그렇지만..


아, 힘들다. 돌아가는 길에 맥주나 사갈까. 파일을 덮고 사물함에 넣은 토도마츠는 길게, 무겁게 한 숨을 쉬며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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