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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상/네가 서있던 자리

[이치카라] 네가 서있던 자리 1

by 체리롤 2015. 12. 28.

*나이 간단 설명
이치 27 오소쵸로29 토도26 쥬시 17
*스토리 진행상 캐릭터 성격붕괴 있음
*다소 빠르게 진행





마츠노 카라마츠의 일상은 온통 자신의 열 살 어린 동생에게 묶여있다.

마츠노 쥬시마츠라고 불리는 그의 동생은 조금 심각한 수준의 정신분열증과 약간의 대인기피증, 특별히 심한 것은 아닌 조울증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자신의 형인 카라마츠에게 심각한 의존증을 보이고 있었다. 그탓에 그는 매 순간, 매 시간을 자신의 동생을 위해 보내야 했으며 그건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를 먹을 동안 까지 이어져 현재의 그는 이렇다 할 직업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부모님은 나이 든 자식이 손을 벌려도 충분하게 안겨줄 수 있을만큼의 수익을 얻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의 골치덩이 둘째아들을 장남인 그에게 떠넘기는 형태로 집안의 문제를 해결 중이었기 때문에 그가 직업을 가지지 못한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동생의 상태를 눈치채고 병원에 데려가기 시작한 5년 전부터 그가 자신의 인생을 제 동생을 위해서만 쓰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문제임은 틀림 없었다.

매일 다니는 곳은 집과 동생의 병원 뿐. 아주 가끔 놀러나가는 것도 언제나 동생과 함께, 그것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동생탓에 언제나 긴장 상태였다. 덕분에 그는 친구도, 애인도 없이 제 나이 또래가 격을 일 중 그 어느것도 경험해 본적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인생은 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그의 동생 또한, 제 형에 대한 의존도가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놀랍게도 그런 상황에 대해 전혀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제 동생을 향한 깊고 무한한 애정을 품었다. 그는 하나뿐인 자신의 동생을 정말로 사랑했으며 어릴적 부터 부모의 손을 타지 못한 동생을 깊게 동정하고 동조하며 아꼈다. 걱정마, 쥬시마츠. 내가 있잖아. 너의 자랑스러운 형님이 곁에 있어줄게. 언제나 속삭이는 말처럼 마츠노 카라마츠는 마츠노 쥬시마츠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형이라는 것이 기쁨이고 자부심인 남자로 살았다. 그것이 삶의 전부인 양.

마츠노 쥬시마츠가 제 형에게 의지하듯, 마츠노 카라마츠라는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마츠노 쥬시마츠였다.





마츠노 이치마츠는 정신과 의사다. 그는 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의학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남자였고 약 2년전 쥬시마츠가 난동을 부렸던 사건 이후로 쥬시마츠를 담당했던 의사임과 동시에 지금은 쥬시마츠가 다니는 상담실과 새로운 담당의사를 소개시켜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쥬시마츠의 보호자인 마츠노 카라마츠와 관련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역시 이상하다고."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

따듯하게 데워진 코코아를 홀짝이며 카라마츠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또 밤을 샌건지 퀭하게 내려 앉은 다크써클이 안쓰러워 보인다. 그러나 걱정하는 표정의 카라마츠와 달리 이치마츠는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혀를 차더니 뭔가를 잔뜩 휘갈긴 차트판을 카라마츠의 옆자리로 집어던졌다. 카라마츠는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움찔했으나 쿵쾅쿵쾅 제 옆자리로 와 털썩 앉아버리는 이치마츠의 모습을 보고 빠르게 겁먹은 표정을 숨겼다.

"쥬시마츠는 너에 대한 의존성이 너무 강해."
"힘들어하는 동생을 위해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 바로 형님의 역할이지. 당연한거다."
"당연하긴. 네 놈이 그렇게 뭐든지 받아주려 하니 쥬시마츠가 도피하려고만 하잖아. 그것만 아니었으면 쥬시마츠는 불안정하더라도 좀 더 사회성을 배울 수 있었어."
"쥬시마츠에게 불신감을 심어주지 말라고한건 너잖아."
"맞아."

그래도 넌 정도가 심해. 잔뜩 찡그린 눈매가 카라마츠를 향한다. 언제나처럼 나른한 눈가는 이렇게 짜증을 담아 인상을 쓰면 제법 무서운 인상으로 변해버렸다. 이치마츠의 심해같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며 카라마츠는 침을 삼켰다. 꾹 쥔 오른 손이 작게 경련한다. 왜... 왜 그렇게 봐. 십초도 되지않아 꼬리를 내리듯 당당하게 마주 했던 시선을 흘끗 땅으로 돌리며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시선을 외면했다.

카라마츠는 간혹 이치마츠의 이런 시선을 받을때면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고양이, 아니 호랑이 앞의 쥐가 된 기분이었다. 이치마츠의 눈은 예리하고 정확하다. 사람의 속까지 파고들듯 전신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시선은 꼭 감춰둔 사람들의 비밀을 캐내어 제 앞으로 가져가게 만들었다. 그가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정신과 의사로 소문난 것은 바로 이런 능력 탓이었다.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 그 시선을 받을 때면 해가 쨍쨍한 광장 한복판에서 나체가 된 기분이 들었1다. 그래서 이치마츠의 시선을 받을 때면 죄지은 것이 없을 때도 이렇게 긴장이 됐다.

카라마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치마츠의 시선이 길게 이어질 수록 오른 손이 경련을 일으킨다. 긴장하고 있는 탓이다. 카라마츠는 슬쩍 오른 손을 제 등뒤로 감췄다. 움찔 움찔 경련이 나기 시작한 오른 손의 손목이 시리듯 아파왔다.

너 말이야. 순간 이치마츠의 시선이 잠시 느슨해 지더니 짧은 한 숨과 함께 사라졌다. 카라마츠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뭘?"
"나는 쥬시마츠보다 네가 더 심각하다고 보는데. 아니 악질적인가."
"그러니까 뭘."

알고있잖아. 부정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이치마츠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여유로운 표정만 잠깐 지었을 뿐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려고도 하지 않는듯 말을 끝내버렸다. 카라마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치마츠는 가끔 알 수 없는 말들만 내뱉는다. 특히 쥬시마츠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가끔은 자신을 탓하듯 말하기도 하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 답답하다. 제 할 말만 해버리고... 이치마츠의 얼굴을 살펴보려했지만 상담자의 얼굴을 한 이치마츠의 표정을 읽기란 쉽지않다. 할 수 있는거라곤 입술을 잘근거리며 말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 뿐. 야, 입술 깨물지마. 그러거나 말거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것보다 나 잠깐 잘테니까."
"어? 피곤해?"
"보면 몰라? 아니면 어느새 바카마츠가 된거야?"
"아.. 아니.."
"새로운 논문 준비 때문에 벌써 3일째 철야야. 죽겠어. 무릎 좀 빌리자."

어어.... 뭐야, 싫어? 그런게 아니라.. 카라마츠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잖아. 뭐가 문제야. 이치마츠는 차트판을 치우고 벌러덩 카라마츠의 무릎에 제 머리를 누이고 발을 쭉뻗어 쇼파 밑으로 흔들었다. 익숙하고 기분좋은 느낌. 이치마츠는 순간 학창시절의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추억에 빠져들 뻔했지만 뒤따라오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상념을 접었다.

" 쥬시마츠가 기다릴텐데..."
"상담시간 한 시간 남았어. 걱정마."
"그런가.."

그런가.... 미련과 걱정이 잔뜩 남는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한 번 더 힘주어 말하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린다. 이치마츠는 눈을 들어 카라마츠와 눈을 맞췄다. 허공에서 얽혀들어간다. 카라마츠는 눈이 마주치자 베시시 풀어진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가 깨어줄게. 한 숨 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이치마츠는 나른한 눈커풀을 느리게 깜빡이며 슬쩍 입가에 미소를 띄우다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