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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루조로] 어린 연인

by 체리롤 2015. 12. 7.
*귤님 생축글
*공포 4848. 공미포 3650.
*사실 9개월 전에 써드리려던거닦ㅋㅋㅋㅋㅋ
*급마무리
*배고프당ㅇㅅㅇ..




도르륵
연필 굴러가는 소리만 방안 가득 차오른다.
늦봄도 지나가고 이제 여름날의 햇살이 찾아오기 시작한 5월 중순의 어느 무렵. 15평짜리 작은 원룸 안에 두 명의 남자가 앉은뱅이 상을 펴둔 채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다. 한 명은 양 옆에 종이다발을 쌓아두고 낡은 노트북 화면과 씨름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낙서가 가득한 노트를 아무렇게나 펼쳐둔 채 상에 엎드려있었다.
톡톡. 책상에 엎드려 손장난을 치던 소년이 반쯤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앉은 이를 바라본다. 톡톡톡. 손끝으로 상을 두드리며 손장난을 쳐보지만 평소와 같이 조용히 있어, 라던가 집중해, 라던가 하는 말이 돌아오지 않자 동글동글한 얼굴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십분 전부터 이런저런 행동들로 제 앞에 앉은 남자의 눈길을 사로잡아보려 애써 보지만 조각칼로 세긴 듯 미간에 깊게 주름이 잡힌 상대는 미동이 없다. 뭐가 그리 바쁜지 검은 뿔태 안경이 코끝에 걸쳐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도르륵. 손끝에서 멀어진 연필을 다시 반대 손으로 툭 굴리며 루피는 결국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오늘은 주말이었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에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햇볕의 열기를 날려주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때마침 근처 상가에선 새로운 게임센터가 들어서 오픈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하고 질 좋은 고기를 파는 정육점에서도 2주년 기념 특별세일을 준비 중이었다. 아마 루피의 친구중의 몇은 게임센터로 달려 나갔을 테고, 루피의 모친을 포함한 동네 아줌마들은 분홍 장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정육점에 긴 줄을 만들고 있었을 터였다.
작은 동네의 거리는 아마 온 마을 사람들로(과장) 떠들썩할 텐데 이 작은 방안은 아무 일도, 아무 술렁임도 없다. 여름을 대비해 미리 꺼내놓은 선풍기에 낀 먼지만 눈앞에 아른아른 거슬리고 상 위를 몇 번 구르던 연필이 자꾸만 몸을 뒤척이는 루피의 팔꿈치에 밀려 방바닥으로 떨어졌을 뿐 이 작은 방 안은 거리의 열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 평화롭고 유난히 무료한 날에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검은 노트북만 윙윙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루피는 괜스레 눈에 힘을 줬다. 학교에서도 하기 싫은 공부를 휴일까지 끌고 오는 것도 모자라서 오랜만에 보는 연인은 눈이 붉게 충혈 될 만큼 낡은 노트북의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쁠 리가 없었다. 평소라면 노트북이 뿜어내는 열기를 식힐 쿨 팩 대신 손부채가 제 머리를 쓸어내리고 새로 오픈한 게임센터에서 총 게임을, 고기를 노리는 아줌마들 사이를 헤치고 획득한 고기를 손질 하고 있을 연인의 투박한 손은 노트북의 자판을 어루만지느라 정신이 없다.
부활동이었던 검도부에서나 보여주었던 진지하고 신중한 눈빛도 딱딱하고 더운 열기만 풍기는 노트북 따위에게 보이는 눈빛이라면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루피의 투덜거림이 늘고 항상 반짝반짝 장난스런 눈빛이 불만에 가득 차 흐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조로오-"
".....응? 어. 잠시만."

이것만 하고.
그 말도 벌써 몇 번째인지. 이제 세다가 지쳐 루피는 다시 한 번 책상에 얼굴을 푹 파묻고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없는 공부 따위 내버려두고 주말을 즐기며 좋을 텐데. 날씨도 좋고, 평일 내내 데이트 할 생각이 가득이었는데. 아아- 조로오가 안 놀아준다아아아-... 쭉 뻗은 다리를 작게 동동동. 어린 아이처럼 보채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볼멘소리들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루피는 제 체온으로 뜨끈해진 상 위에 제 얼굴을 문대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조로가 한 박자 느리게 놀란 얼굴을 하고 루피를 힐끔 바라보다가 망설이는 듯 작게 꿈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피의 더위로 열이 오른 볼이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쳐다도 안 봐? 그렇단 말이지. 조로가 안 놀아주면 혼자 놀면 되지. 공부는 정말 싫은걸!
루피는 척척 걸음을 옮겨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약간 꺼져있는 스프링이 몸을 던진 루피의 무게에 맞춰 출렁인다. 조로 냄새. 침대에 옅게 스며든 체취에 루피는 부드러운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조로의 집에서 루피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침대였다. 앉기에도 눕기에도 편하고 푸른 이불속에 그려진 무늬는 보고있으면 뭐가 그리 웃긴지 괜히 웃음이 났다. 게다가 혼자사는 조로의 청소실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깔끔하게 정리된 잠자리는 이 집안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돈된 곳이기도 했다. 루피는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꺼내들며 파란 이불이 깔린 침대 위에서 팔을 휘저었다. 슥슥, 피부에 닿는 이불의 감촉은 부드러웠다.
루피가 조로와 놀 때 자주 자리하는 곳도 침대다. 월간 만화잡지를 읽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아니면 게임을 할 때에도 둘은 침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가끔은 식사도 침대에서 했다. 집에서 그랬다간 혼이 날테지만 조로 혼자 살고있는 자취방은 둘만의 아지트같은 느낌이어서 그런 짓도 곧잘했다. 그리고.. 그리고 잠자리도 가졌지.
루피는 한쪽 팔을 휘휘저어 침대한켠에 얌전히 앉아있는 돌고래 인형을 끌어안았다. 돌고래 인형은 조로의 생일날 루피가 극구 거부하는 조로의 품에 안겨주고만 인형이었다.
심심해. 한쪽 다리를 튕기며 작게 중얼거린다. 조로 숙제 방해하면 안돼. 그치만 공부보다 노는게 더 좋은건 사실이잖아.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본능이 거부한다. 심심해!! 조로랑 놀고싶어! 루피는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차마 겉으로 외치지 못하고 속으로 아우성을 쳤다.
사실 조로가 공부를 한다며 루피와 노는 것을 거절하는 일은 왕왕 있는 일이었다. 다만 유독 루피에게 약한 면이 있는 조로가 자꾸 딴 짓을 하며 치근대는 루피에게 못 이겨 공부는 뒷전이 되는 일이 대부분이여서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며 얕은 꾀를 부렸지만 이번에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안경 쓴 조로는 멋있지만 재미없어. 고개를 푹 숙인 루피가 투덜투덜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여전히 노트북과 씨름중인 조로는 답이 없었다. 힐끔. 같은 포즈, 같은 얼굴. 어떻게 저런게 한 자세로 한 시간이나 버틸수있지? 루피는 익숙하게 인형을 끌어안아 배 위에 턱 올려둔 채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혼자라도 놀겠다며 침대로 뛰쳐 올라갔지만 막상 할만한게 없다. 자주 울리던 메세지 알림도 오늘따라 연락이 없고 자주하는 게임 앱이나 다운받아둔 애니메이션도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데이트 생각에 부풀었던 기대감이 사라지자 아무것도 흥미가 가지 않는것이 사실이었다. 루피는 하릴없이 제 눈높이에 있는 조로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보는 얼굴이지만 시원시원하게 생긴 얼굴은 정말 보기 좋다. 눈썹을 가로지르는 흉터만 아니었다면 더 보기 좋았을테지만 루피는 오히려 그게 더 멋지다고 생각했기에 상관없었다. 집중하는 눈빛도 멋지다. 조로는 본래도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지만 뭔가에 집중하게 되면 그 인상이 더 강해졌다. 지금도 굳게 다문 입가와 하얀빛이 뿜어져나오는 모니터를 노려보는 눈매가 여간 고집스러워 보이는게 아니다. 루피는 저도 모르게 낄낄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맞아, 조로는 언제나 저런 표정이지. 한결같이 우직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표정. 그리고 저 얼굴이 자신을 보며 미소짓는 것을 루피는 가장 좋아했다.
루피의 시선이 이제 조로의 몸 이곳저곳에 머문다. 피어스를 한 귓볼이나 짧은 머리카락에 덮인 목덜미. 오똑한 콧날이나 턱선. 그리고 입술. 웃거나 말하거나 우물거리는 입술.

아. 키스하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좋아하는 상대의 좋아하는 얼굴을 보고있자면 아랫배의 열기가 들끓었다. 집중하는 그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어쩔 수 없잖아. 그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인걸. 키스하고 싶어진다고. 이게 나쁜일은 아니잖아? 드글드글 끓어오르는 감정이 저는 나쁘지않다고 소리친다. 맞아, 사실 나쁜건 아니지. 같이 놀아줬으면 이런 일 없잖아. 그러니까 나쁜건 조로야. 루피는 성화를 부리는 제 본능에 답했다.

"조로."
"...응, 미안. 잠시만"
"조로."
"...."
"롤로노아 조로."
"...루피."

조로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막 과제의 막바지에 들어 마무리만하면 심심하다며 발을 굴러대는 루피를 데리고 놀러나갈 수 있었다. 조로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화났나? 이것만 하면 되는데.
루피는 천진한 아이였지만 제 좋을대로 하려는 성향이 강해 가끔은 어린애를 상대하는 느낌이 들곤했다. 그럴때마다 조로는 불평 대신 제 연인에게 맞추어 주는 일이 많았는데, 그건 제 연인에게 맞춰준다기 보다는 어린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소꼽친구이고 조로는 루피에 비해 두살 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들이 몸에 베인 탓이었다.
루피는 그것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그래서 가끔 루피가 제 기분에 따라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로 조로를 휘어잡을 때면 조로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제 앞에서 애교를 부리던 호랑이가 이를 드러낸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조로는 화가난 루피의 모습을 상상했다. 풀네임을 부른다는건 그 신호다. 조로는 화가난 루피의 서늘한 얼굴까진 볼 수 있다며 각오를 다지며 눈을 맞췄다.
쪽. 그러나 각오 끝에 다가오는건 입술 끝에 닿는 말캉한 감촉뿐이다. 어느새 제 바로 옆까지 다가온 모습에 조로는 놀라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마주친 눈동자엔 개구진 장난기가 듬뿍 묻어난다. 화난 얼굴도 싸늘한 얼굴도 남자다운 얼굴도 아니다. 그냥 루피의 얼굴이었다. 그냥 방금처럼 데이트를 하자고 조르던 모습. 조로는 커다래진 눈으로 루피를 바라보았다. 루피...?

"조로."
"루피."
"키스하고 싶어."

오래 기다려 줬으니까 이제 상 줘. 루피가 빙긋 웃었다. 아. 조로는 조용히 마우스를 움직여 과제를 저장하고 노트북을 종료했다. 방긋 웃는 입술이 조로의 마우스를 쥔 손을 가볍게 훑고 있었다. 루피로써는 오래 참은거겠지. 사실 조로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리 없다는 걸. 그래. 조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못다한 데이트를 해야하는 순간이었다.
조로는 긴 말 하지 않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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