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터 안의 세계는 의외로 쾌적하다.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생태계 시스템과 비축해둔 많은 물자들. 각자 배정된 방은 사실 지상에서 썼던 작은 다다미 방보다 훨씬 좋았다. 욕실이 딸린 화장실은 욕조까지 있었고 전에 쓰던 스프링이 죽은 침대보다 폭신한 이불이 깔린 새 침대가 훨씬 좋은 것은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제 손 때가 묻은 지상의 물건보다 정겨울 순 없는 법이었다. 조로는 매 순간 모든게 낯설었다. 눈을 뜨면 항상 침대 옆을 지키던 죽도가 보이지않았고 침대 맡의 창문대신 차가운 벽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면 풍경화면이 떠있었지만 실제의 태양의 온기나 바람의 한들거림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푸른 세상 대신에 어둡고 무거운 암벽이 머리 위를 덮고 있었다.
조로는 매일 아침 가볍게 쉘터 중앙광장을 뛰었다. 익숙한 습관이기도 했고 불안감과 알 수 없는 초조함이 그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가볍게 운동을 마치고 나면 방으로 돌아와 다시 잠을 잤다. 식사는 한달에 한번씩 나눠주는 식사권으로 원하는 메뉴를 골라먹으면 됐지만 이상하게 식욕이 돌지 않아 아침, 점심을 굶고 저녁만 챙겼다.
원래도 낮잠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이곳에 오고 난 이후에는 더 잠이 많아졌다. 낮잠을 자는 일과 운동말고는 할게 없었다. 방에는 만화책 몇 권과 책 몇 권이 꽂혀있었지만 지상에서 읽던 내용의 책은 없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그저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어 움직이기만 하는 지극하게 위태로운 나날.
그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었으나 원활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 선을 지키며 제 나름의 규칙과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처음 아침을 맞이한 순간 극심한 박탈감을 경험했다.
뭘 해야하지.
무엇을 해야하는걸까. 살기 위해 나는 어디에 나를 둬야하는거지.
그 전에도, 그 전의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삶에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가, 아니,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두지 않았으나 극적으로 내몰린 현실에서는 그것이 필요했다. 이곳은 아무도 사람들에게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행했던 행위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곳엔 더 이상 화폐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고, 한정된 물자 아래 '성취' 대신 후에 다가올 새로운 생태계에서의 인류의 생존을 목적으로한 '보존'과 '유지'만이 남아있었다.
더 얻을 수 있는것도, 덜 받는것도 없다. 지상에서 처럼 제 욕심을 내보이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다가는 다같이 자멸하고 만다. 인류는 이제 노력하는 것조차도 사치에 불과했다. 주어지는 것은 주거 공간과 먹거리. 인간이 공급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모두 충족되어 있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다. 그때문에 그는 목숨을 얻음과 동시에 무력감을 얻었다.
이것은 박탈감이다. '현재'에 예전 같은 '현재'는 존재 하지 않는다. 비참한 현실이었지만 모든 것이 평화롭고 평등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공포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멸하게 된다는 공포. 그는 그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 공포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는, 그의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
현실이 모두에서 공포를 안겨주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조로)처럼 주저 앉아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 중에는 어느새 지상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일을 도맡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상보다야 한참 작지만 그래도 500명이라는 인원을 수용하고도 남는 넓은 공간 안에 일거리가 없을리가 없었고, 그 일을 맡아줄 용역단체가 사라졌으니 그 자리를 메울 사람들은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 뿐이었다. 마치 정해지기라도 한 것 마냥 한동안 넋이 나가 있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자 하나둘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그러나 조로는, 그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그들은 답답한 어항 안에 갖힌 피라미떼처럼 그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제 할 일을 필사적으로 찾아내고 있는것 처럼 보일뿐이었다. 단순히 세계가 좁아졌을 뿐인데도, 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무력감은 사람을 미치게만들었다.
"......"
그래서 그는 잠을 잤고, 말을 잃었다. 본래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매일 꿈을 꿨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꿈이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도시에서 눈을 떴다.
슬픔은 언제나 그의 주위를 맴돈다. 그는 비탄한 울음소리와 함께 눈을 뜨고 볼을 타고 흘러내를 눈물을 따라 몸을 숙였다. 또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오늘도, 오늘도, 여전히. 저 문 밖의 사람들은 제 할 일을 찾아 밖으로 나섰고 그는 오늘도 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
"조로..."
"......"
모든것이 핑계에 불과 할 뿐이라는 걸 알게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결국에 모든 문제는 그거였다. 공포가 그를 짓누르는 것도, 도망 칠 수 없는 현실에서 발버둥 치는 것도, 살아갈 수 없어 숨만 쉬는 그 모든 이유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이유가 슬픔 때문이었다. 슬픔이 발치를 기어 누인 몸을 타고 오르며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런저런 말들과 변명들을 이유로 자신이 죽어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모두 그 탓이었다.
그는 박탈감을 얻었다. 그것은 모든것을 잃은 가련한 자의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인지 할 수 없었고, 슬픔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미래를 꿈 꿀 수가 없었다. 살기위해 희망을 찾아야 했다. 이유를 찾아야했다. 슬픔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의 모습을 외면해야했다.
그리고 드디어.
언제나 같은 까치집이 진 검은 머리와 눈물에 젖어 엉망이 된 얼굴.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 안에서 숨을 쉬었던, 웃는 얼굴이 노을속에서 흐려지던 그 모습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에서야 그는 모든 것을 깨달았고, 오늘도 밝아오른 아침속에 그의 삶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