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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인호 치비인호

by 체리롤 2016. 1. 10.

*2012년 글


"인호야."

놀이터에는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한손에 각기 다른 길이의 막대기를 쥐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 끝에서 신이난듯 이제 막 아이들을 뒤따라 달리려던 꼬마 하나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멈춰섰다. 천천히 돌려진 고개와 쭉 찢어진 눈꼬리가 자신을 쏘아보는 것에 유정은 환히 웃었다.



*


매섭게 올라간 눈꼬리가 더욱 귀여운 꼬마를 만나게 된건 지난 12월쯤. 으레 그렇듯 그해 겨울도 매서운 바람이 아무도 없는 공터안을 맴돌고 있었다. 유정은 그날 그 공터를 지나가다가 우연히도 추위에 떨고 있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어미가 버리고 간것인지 아니면 어미도 이 추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죽어버린건인지 혼자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몸을 누이고 벤치 아래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는 모습이 퍽이나 애처로웠다. 유정은 그날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길을 걸으려다 그 어린 생명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발걸음을 돌렸다. 약하게 미야, 미야, 하고 울며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할 힘조차 없는 듯 축 늘어진 생명체를 유정은 동정과 호기심을 담아 바라보았다. 그는 도덕적 관념이 매우 얕은 사람이었다. 싸이코 패스 라고 불리기엔 그보다 좀 더 도덕적이었고 그렇다고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취급하기엔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유정은 그 어린 생명의 머리를 검지손가락 으로 쓰다듬다가 자신의 목에 두른 머플러 를 풀어 따듯하게 감싸줬다. 그리고는 해줄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해줬다는 양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해줄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 이므로 이 이후에는 이것이 죽든, 아니면 다른 이의 손에 구출 되든 자신이 알바가 아니었다. 자신은 바빴고, 또 해줄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해주었으므로 이 이후는 자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유정은 좀 더 편해진듯 보이는 아기 고양이를 한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서둘러가면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갈수 있을 터였다. 매번 10분 먼저 나가있는 자신의 습관(?)만 아니었다면 오늘 약속에 늦었을 지도 모를일이다. 유정은 멀어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걷기 시작했다. 만약 돌아오는 길에 볼수있다면 이 고양이의 최후를 보는 것은 자신이었으면 했다.


유정은 일부러 먼길을 돌아왔다. 낮에 보았던 고양이의 최후가 어찌되었는지 궁금해서 다른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는 일 없이 훌륭하게 대처했지만, 그의 마음은 오늘 하루종일 그 고양이에게로 가있었다. 죽었을까. 아님 살아있을까. 살아있다면 자신의 온기를 잊지못하고 자신이 다가가 그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면 야옹하고 울어줄까. 만약 그렇다면. 만약 아직 살아있다면. 자신을 기억한다면 그 고양이를 데려가볼까 하는 의향도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구하고 그 생명이 자신을 구세주 처럼 바라보며 자신만을 따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절로 빨라지는 발걸음으로 유정은 공터에 도착했다. 미야, 하고 아침에 울렸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직 살아있구나. 유정은 걸음을 서둘렀다.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저 근처에 그것이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유정은 서두르던 발걸음 을 멈추었다. 시선을 준 곳에는 작은 아이 한명이 참치캔 하나를 들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 앞에는 낮에 자신이 둘러준 머플러 안에서 새끼 고양이가 아이의 손길을 느끼며 나약하게 울고 있었다. 이거 먹어. 아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이미 꽤 늦은 시간이다. 저 또래 아이라면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도 남을 그런 시간. 그럼에도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듯, 아이는 추위에 떨면서도 연신 고양의의 등을 쓸어내렸다. 얼른 먹고, 기운 내야지. 서글프게 울어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저도 슬프다는 양 코를 훌쩍인 아이가 손으로 참치를 조금 덜어내어 그것을 고양이에게 가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 얼른.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는 연신 말을 걸고 있었다. 엄마가 올때까지 기다려야지. 얼른 먹어. 아이가 목소리에 힘을주어 그것을 내민다. 그러나 이미 고양이의 생명은 끝을 다해가는 듯 했다. 울고있는 목소리에 힘이없다. 아마 이미 자신이 발견했을 무렵부터 힘을 다했겠지. 그러나 유정은 고양이에 대한 미안함보다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일었다. 애처로운 목소리에는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동정심이라기 보단 자신과 같은 처지의 존재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슬픔이 묻어있었다.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유정은 잠시 고민했다. 이제 고양이에 대한 흥미보다는, 저 어린 꼬마에 대한 흥미가 더 커져있었다. 자, 어떻할까. 저 아이의 호감을 얻으려면. 적어도 자신을 보게 하려면. 유정은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답은 언제나 정해져있다. 그는 누군가의 마음에 침입하여, 그 마음을 얻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지금 해야할것은 한 가지. 가장 간단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

"꼬마야."

화들짝 놀라는 어깨가 보인다. 휙 고개를 돌린 아이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에 비춰졌다. 부시시한 갈색 머리에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얼굴엔 개구쟁이 인것을 증명하듯 상처가 나있었고, 몸 여기저기에도 상처들이 눈에 띄었다. 씩씩하게 생긴 남자아이. 여느 개구쟁이 아이들 처럼 활발하고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그러나 특별나게 예쁜 구석이 없는 그런 아이였다. 삐뚜름한 입술에는 불만이 가득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는 낯선이에 대한 경계와, 당혹감 그리고 이 늦은 시각 이 거리에 있는것에 대해 혼이 날까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유정은 다시 씩 하고 미소지어보였다. 그리곤 나무라는 목소리도, 그렇다고 이 늦은 시간에 이 거리에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을 담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고양이, 아픈것 같은데."

아이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다. 알고 있는 사실을 언어로 확인함으로써 아이는 더욱 슬픔을 느끼는듯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 고양이 의 곁으로 다가간 유정은 그것을 모른 채 하며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안아들었다. 이 고양이 네꺼니?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제 고양이가 아니예요."

물기가 서린 목소리로 아이가 대답했다. 유정이 그럼? 하고 되묻자 아이는 되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유정을 쏘아붙였다. 몰라요!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다구요!

"그럼 네 고양이가 아니구나."

네것이 아니구나, 하고 말을 하자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상실감에 휩쌓인 얼굴을 한다. 가지고 싶은 모양이군. 유정은 품안에 든 고양이를 고쳐 안았다. 미약하게 바르작 거리는 그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고쳐 안고는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고양이, 내가 데리고 가도 될까? 이대로 두면 죽어버릴지도 몰라.

"사.. 살릴수 있어요?"

순간 자신의 옷깃을 잡아오는 아이의 손길에 유정은 휘청였다. 다급하게 붙잡아오는 손길에 힘이 실려있다. 물론, 병원에 데려가면 살아날거야. 빨리 데려가야 살수 있는 확률이 더 높을껄? 아이가 자신을 붙잡는 통에 휘청였지만 유정은 모르는체 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이는 솔직하다. 봐,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숨기는 일이없다. 거짓말을 하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항상 티가 난다. 어른을 두려워하고 어른에게 강한척 하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기대고 마는 것 처럼.

"물론. 이 고양이, 내가 꼭 살려줄게."

유정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움찔 하긴 했지만 얌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어딘가 고양이와 담기도 했다. 곧이어 표독스럽게 쏘아보며 자신의 손을 쳐내는 모습 마저도.

"약속이죠? 고양이 꼭 살려주세요. 엄마를 잃어 버렸나봐요. 엄마가 곧 찾아올지도 몰라요. 엄마가 찾아왔을때 고양이가 없으면 엄마는 무척 슬플거예요. 그 고양이도 엄마를 기다릴거예요. 엄마랑 못 만나면 너무 슬플거야. 그러니까 꼭 살려주세요."
"그래, 약속할게."

아이는 손을 내밀었다. 나머지 손을 접고 약지와 검지를 편 모양으로 유정의 손을 억지로 걸어 약속을 하고는 걱정스런 얼굴로 고양이와 유정을 힐끗 바라보더니 등을 떠미는 유정에 의해 마지못해 집으로 향했다. 미련이 남는듯 발을 질질 끌던 아이는 몇걸음 체 못가다가 되돌아 와서는 유정에게 소리쳤다.

"제 이름은 백인호예요! 고양이가 다 나으면 꼭 보여주셔야 해요!"
"내 이름은 유정이야. 그래, 다음에 꼭 보여줄게."

*


"안녕, 인호야. 고양이가 다 나았거든. 우리집에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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