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미션/완성샘플

ㅇ님 샘플

by 체리롤 2016. 4. 30.


[이자시즈] 나락



for. ㅇ님


쇼가 시작되었다.

긴 장막 너머로 함성소리가 쏟아졌다. 겹겹이 쌓인 장막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추잡하고 더러운 욕망의 소리였다. 남자가 가볍게 발걸음을 놀려 그 안쪽 깊은 곳 까지 도달 했을 무렵에는 이미 한창 달아오른 열기가 후끈하게 천막 안을 데우고 있을 때였다.

추운 겨울의 냉기마저 앗아갈 만큼 뜨겁게 채워진 욕망 한 가운데에는 작은 소년이 있었다. 이 작고 여린, 가엾은 어린 생명이 자신을 짓누르는 욕망 한 가운데서 허덕이며 울부짖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 쇼의 전부다. 인간의 욕망을 쏟아 붓기 위해 만들어진 가련한 생명체. 남자는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세워져 있던 커다란 광고판에서 보았던 문구를 되새겨 보았다. ‘망가지지 않는 몸. 죽지 않는 불사의 소년.’ 남자는 그런 광고판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벌써 며칠째 같은 홍보가 걸려있는 쇼에 묘하게 흥미가 돋았다.

남자는 신체적으로 뛰어난 존재가 필요했고 진짜 일리는 없지만 만약 보통 사람 이상의 치유력이나 건강한 육체만 되어도 남자에게 손해는 아닐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아주 만약, 그 광고가 거짓이 아니라면. 아니, 그럴리 없지. 하지만 묘한 흥분감이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인연이 자신을 이끄는 것처럼, 남자는 짙게 띠운 웃음을 삼키며 제 손을 덮은 하얀 장갑을 벗어 제 주머니에 넣어 놓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이제 쇼를 관람할 시간이었다.


*


쇼가 시작되기 전에 무대에 선 여섯 명의 남자들은 어린 소년의 몸을 관객에게 구경시켰다. 깨끗하고 하얀 몸. 작고 여린 육체. 공포에 질려있지만 체념이 서린 표정까지 모두 이 쇼를 위한 구경거리였다. 남자 중에 한명이 소년의 목에 목줄을 걸고 양 손을 밧줄로 묶었다. 거친 손놀림에 휘청이는 몸이 땅을 굴렀지만 그것 또한 여흥의 한 방법인지 바닥을 구르는 소년을 일으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땅으로 굴러 처박힌 소년의 갈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벌써 이곳으로 넘겨진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소년이 겪어야했던 무수히 많은 불행과 고통 중에서 이곳의 고통은 그 어디에도 견줄만한 곳이 없었다. 소년은 매일 수많은 눈동자에 갇혀 울부짖었다. 작은 몸을 열어 제 하얀 나신을 보여주고, 치욕을 당하고, 울음을 쏟아내며 종내엔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매일, 하루에 다섯 번씩. 그것도 모자라 일주일에 한 번 쇼가 쉬는 날에도 쇼를 관리하는 관리자들과 수많은 일꾼들에게 둘러싸여 작은 몸을 혹사당해야 했다.


일종의 지옥이었다. 끝나지 않는 지옥. 폭력은 고통을 몰고 왔고 지독한 욕망은 또 다른 고통이 되어 소년의 목을 옥죄였다. 소년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밑바닥까지 꺼진 절망이 소년의 등을 자꾸만 떠밀었다. 소년은 매일 죽음을 그렸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이대로 죽으면 좋겠다. 아프고 싶지 않아. 아프기 싫어. 이정도면 죽어도 좋잖아. 그러나 소년의 저주받은 몸뚱이는 살아서 제 몸에 주어지는 고통을 견디라고 말했다. 빌어먹을 육체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워갔고 쾌락을 배워갔다. 이게 너의 운명이야.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 한 몸뚱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죽음은 소년의 탈출구가 아니었다.


소년은 잘근 혀끝을 씹었다. 주르륵 입가에서 피가 흘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정도의 상처로 소년은 죽지 않는 다는 걸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붉은 입술에서 세어 나오는 피와 소년의 파랗게 질린 안색을 구경거리로 내보였다. 남자 중 누군가의 손이 소년의 머리를 잡아채고 쉽사리 딸려오는 몸을 들어올렸다. 남자가 작게 속삭인다. 자, 봐라.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다. 소년의 눈동자가 앞을 향한다. 쨍하게 불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관중석에 앉은 타인의 수많은 시선이 소년의 몸으로 쏟아졌다. 소년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죽지 않는 몸이라는 건 얼마나 편리하고 형평이 좋은지. 소년의 몸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발길질에 밀린 몸은 땅 위를 두 바퀴 구르고는 흙더미에 얼굴을 처박혔다. 악 소리가 흙바닥에 묻힌다. 비웃음이 가득한 웃음소리가 소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만 꿈지럭거리고 일어나. 남자 한 명이 말했다. 비릿한 피 맛과 흙의 텁텁한 맛을 훔쳐내며 소년은 불안하게 몸을 일으켰다.




'커미션 > 완성샘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ㄱ님 커미션 샘플  (0) 2016.05.02
ㅁ님 커미션 샘플  (0) 2016.04.30
ㅍㅇ님 샘플  (0) 2016.04.30